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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계업을 하면서 잊을수없는 추억

 

우선 Crows Nest TAFE에 등록을했다. 일주일 후부터 강의 시작이다. 첫 강의실에 보니 약 30-40명이 되는듯 보였다. 선생님이 자기소개를 하고 여러분은 부동산 과정을 수료하고 (3년 파트타임)부동산 회사에서 2년을 실무경험을 거쳐, 그회사의 책임자로부터 아무 하자가 없다는 서명을 받아야 면허증이 나온다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공부3년, 실습 2년 하고나면 나는 이미 늙어 버리는구나, 50이 넘으니 시간을 단축해야겠다 싶어서 질문을 했다. ”선생님, 공부하는 3년 코스중에 실습 2년을 중복해서 하면 어떻습니까? 하였더니 “그래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밤에는 공부하고 낮에는 복덕방에 취직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다녀볼려니 갈 곳이 없이 막막했다.

마치 전쟁에서 폐허가 된 도시로 돌아와 아는데도 없고 찾아 갈 만한 곳도 없었던 처지였다. 생각이 떠 올랐다. 여기서 장사꾼을 만나면 장사를 하게되고 사업가를 만나면 사업을 하게 되겠지. 누구룰 어떻게 만나는것은 오직 운명이 아니라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나는 호주 최대의 부동산 회사의 문을 두드려야겠다. 생각하고 지인이 있는 호주회계법인 Ernst & Young에 물어보았다. “Jones Lang Wootton” 이라했다. Yellow Page를 보고 회사를 찾아갔다.

시내 큰 빌딩 수개 층을 쓰고 있어 회장실을 찾아가서 좀 만나러 왔다하니 비서가 약속이 되었느냐? 해서 안되었다고했더니 못 만난다는 것이다. 집으로 오면서 생각하니 사람은 못 만나도 편지는 볼 것 아니겠나 싶어서 편지를 해 보기로 마음먹고 집에와서 편지를 쓸려니 막상 이야기는 길지만 핵심을 요약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내가 회사를 다닐때 많은 편지를 받고 써본 경험상 편지는 간단하고 내용이 명쾌하고 호소력이 있어야 살아있는 편지라는 것을 알았다. A4용지에 내용을 담으려니 3 Paragraph 이상은 여백이 없어 간단히 요약했다.

첫째는 나의 지금까지의 경력을 간단히 소개

둘째는 이민와서 지금까지 Take Away shop 도해보고, 무역도 해보았으나 그것이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희망은 부동산이다. 그래서 호주 최고의 부동산 회사에 인연을 맺고싶다. 지금 부동산 공부하고 있다.

셋째는 심부름 시켜주면 고맙겠다. 지금은 힘이 없으나 한국은 급경제성장을 통해 외화가 넘치는데 정부에서 투자를 제한하고 있어 외국으로 못가져 오지만 조만간 그 규제가 풀린다. 그때가 되면 품질 우수한 투자자들을 한국에서 데려오고 한호부동산 투자의 가교 역활을 하고싶다. 나를 알아 볼려면 다음의 연락처로 알아보시면 된다. (회사, 연락처와 성함) 혹시 귀사에 내가 설자리가 없다면 귀사와 유사한 훌륭한 회사를 소개해 주시면 큰 은혜로 생각하겠다.

이렇게 편지를 보냈는데 뜻밖에 회장님의 친필 회신을 받았다. “당신을 한번 만나고 싶다” 언제회사로 한번 나올수 있겠는가?  였다. 당장 비서실로 전화를 해서 약속을 하고 그날 회사를 방문했다. 회장은 비공식적으로 중역 한사람과 나를 회의실에서 만나주었다. 아주 평범한 이야기만 했다. 낵타이 색깔이 좋다 라던가, 왜 이민을 왔느냐?, 한국에서는 무슨일을 했느냐?, 지금 어디 사느냐? 등이였다. 그리고 커피 한잔하면서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했다. 면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면담인 듯싶어 무척 실망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비서 실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회장님이 일본 출장을 가는데 일본에서 하루면 일을 다보고 한국을 가보고 싶어하는데 이틀이 시간이 있는데 혹시 한국의 그룹사 회장을 우리 회장님과 만날 수 있게 해 줄수 있는지?  그룹선택은 나보고 자유롭게하고 시간도 자유롭게 잡으라는것 이였다. 나는 한국과 연락해서 schedule 만들고 연락드리기로 해놓고 우선 내가 있던 “D” 그룹회장실 과 건설부문 사장실에 전화를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때는” D”회장은 미국에 계시고 대신에 그룹사 사장이 주관해서 브리핑과 의전을 할테니 걱정말라했다. 또 다른 한 회사는 “S”그룹을 선택했다. 내고향 후배가 “S”그룹 부회장과 친척이라 주선 가능할 것으로 봐서 부탁을했다. 이틑날 회신이 왔다. 걱정마시고 오세요였다. 단 이회장님은 안되고 부회장님은 런던 출장가시는날인데 참모 사장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잘 안내하라 이야기해 둘테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였다. 나는 호주회장 비서실에 한국에” D” Group 과” S” Group 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 보고 했고 회장은 무척 반가워했다.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나는 부담스러워서 나혼자 서울로 가고 회장님이 일본일정 마치고 서울오셔서 호텔에서 뵙기로 했다.

서울에서 호주 회장과 만나 “D” 그룹 본사로갔다. 준비된 의전데로 회장회의실 내부의 브리핑 실에 서 인사를 나누고 해외투자 담당 중역이 현재 해외의 Network와 향후 해외 투자계획과 호주 유연탄 광산 개발계획등을 잘 설명했다. JLW회장은 아주 만족한듯 보였다. 회의 후 한정식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곧 “S”그룹 본관으로 갔다. 시간에 맞추어 현관에서 부터 안내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실에서 여러분과 인사를했다. 참석자는 그룹 비서실, 전자부문, 해외 투자담당 중역, 사장 및 이사였다. 내용은 “S그룹의 현황과 미래였다. 모든것이 영화같았고 세계적인 그룹 회사의 위상을 나타내주었다. 역시 아주 만족해하시고 우리는 서울 시내 간단한 관광과 롯데 백화점을 들러 호텔로 가서 식사를 마치고 내일 회장님은 호주로 곧장 가시고 나는 서울서 일주일 더 있다가 갈 것으로 말씀드렸다.

회장님은 시드니 오면 즉시 연락을 해 달라 하셨다. 일주일후 시드니에 도착하여 회장실로 전화했다. 비서의 친절한 목소리가 내가 전화할것을 알고 있었는 듯 반가워했다. 회장님을 만나 국제담당 중역과 인터뷰를 하는 것같이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가 보기에 회장이 서울에서 나를 테스트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회장은 언제부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물었다. 나는 “가능하시면 한달 가량 시간을 주시면 감사하겠습 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국에서 가져와서 시장조사하던 수출 견본(악세사리, Bag, 등) 회수하고 이제부터는 그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통보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회장님은 승락하시고 년봉은 얼마정도를 원하는가? 하시기에 저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부동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조건이 있겠습니까? 우선 열심히 배우겠으니 회사가 알아서 대우해 주십시요. 라고 대답했다. 회장은 모든 Detail은 컴퓨터를 열어보면 될것이라 하시고는 직원들이 있는 층으로 내려와 인사를 시켰다.

한달후 사무실에 출근하고보니 주급에 그것도 3개월 임시직이였다. 3개월 일하는 것을 보고 영구직이든 퇴출이든 발령을 낸다 했는데 그것도 감사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월급이 얼마면 무슨 소용이있고 직급이 무엇이면 뭘하겠는가? 오라는 곳도 없고 갈곳도 없었다. 다른 직원들은 전화통에 불이나고 들락날락 바뼜다. 멍청하게 앉아있다는 것이 고역 중의 상 고역이였다. 며칠간 신문이나 보고 커피실이나 들락날락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할 뿐 할일이 없었다. 누가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도 없고 내가 일없이 가만히 있는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시드니에 한국회사 지사가 36개 나와있었다. 그들과 우선 인맥을 만들어야겠다. 그럴려면 외판원 모양으로 내가 찾아가서 명함 내밀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도록 해야 하겠다. 그래서” D” 그룹회장실을 비롯해서 내 아는 사장 몇 분께 편지를 보냈다.

지금 내 입장이 이러하니 시드니에 지사를 갖고 있는 회사의 본사에게, 시드니에서 부동산에 관련된 일이있으면 나를 찾아 상담을 해 주시라고 시드니지사로 원거리 사격을 부탁드렸다. 지금은 말단 판매 임시직으로 일하게 되었으나 이것이 내 발판의 기초가 될지 모른다.

팔 부동산도 내가 만들어야하고 사는 사람도 내가 만들어야하는 냉혹한 부동산 시장에 맨몸으로 무기도없이 뛰어든 셈이였다. 약 한달 후 ” P” 지사에서 연락이와서 지사장과 만났다. 내가 몸담았던 Group에서 뫼시고 있던 황 부회장님이 “P” 그룹회장으로 가셨는데 시드니 지사장에게 전화해주신 것이라 본다”. P” 그룹사무실을 오페라하우스가 내려다보이는 시내중심부 빌딩으로 옮길 계획이라 하신다. 적절한 장소가 있어서 약속을 다시하여 직원들과 세세히 살펴보고 계약으로 성사되었다. 상당한 액수를 수수료로 받아 회사에 입금을 시켰다. 그뒤 계속 해서 한국 총 영사관, 삼성, 현대, 효성, 럭키, 타이어, KOTRA, 관광공사, 등 여러회사들이 친절히 도와주었다. 당해 년도 입금실적 이 최우수 20%안에 들어갈수있는 실적이 기록되고 특히 그해 총영사관 관저 계약은 명성이 높았다. 회사에서 욧트를 빌려 직원들과 선상파티를 해주었다. 그 다음해 부터는 운이 좋아 투자이민이 시작되어 투자이민자, 시드니에 유학온 유학생 학부모, 호텔투자, 회사투자, 현지법인 사택투자, 등 여러 투자 문의와 상담으로 바빠지고 있었다.

 

영어 62 오식원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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