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장사
날은 맑고 청명한데 마음은 늘 깨운치 못했다.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나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였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들어오는 회사생활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민와서 하루 종일 일이 없다는것이 상당한 고역이였다.
나는 Chinatown 에가보았다. 그날 Chinatown 은 사람들로 붐볐고 모든 shop 들이 바쁘게 생기가 넘치는것 같았다. 마침 사람이 이중 삼중으로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조그만 아이스크림 숖이 있었다. 가만히보니 아이스크림 숖인데 커피 쥬스, 각종음료, 센드위치, 등을 파는 Take Away Shop 이였다. 사람이 많은것을보니 이만하면 위치도 좋고 인기도 있는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이런것 하나 하면 밥은 먹겠구나 싶었다. 주변에서 어둠이 시작될때까지 오랫동안 그 가게 주변을 주시했다.
마침 주인이 문을 닫고 퇴근 준비를 할때 나는 다가가서 혹시 이 가게 팔 생각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의아하게 나를 보면서 지금 신문 광고 중이니 그 복덕방에 가서 상담하라 하면서 전화번호를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상쾌했다. 다음날 복덕방에가서 권리금을 정하고 10% 계약금을 걸었다. 조건은 6주후에 잔금 내고 3주동안은 실지 장사가 말하는것만큼 되는지 안되는지 Trial 하고 전 주인은 3주동안 실제 메뉴얼을 가르쳐주고 종업원은 두명 그대로 인수하는 것이였다. Take Away는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커피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센드위치 이름들도 모르면서 덥석 가게를 잡고 말았다.
집 사람에게 사실 이야기를 했더니 또 펄쩍 뛰었다. 할줄도 모르는 일을 어떻게 할려고 그러느 냐고 야단이다. 마침 고향 친구가 시드니에 놀러와서 있던 중이였다. 친구보고 같이한번 해 보자 했더니 그는 쾌히 승락했다. 가게는 집사람과 친구도 있고 일해오던 종업원 호주 여자 두명이 있으니 잘 될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북적거리던 그 가게와 주변이 그때만큼 복잡하지가 않았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그때가 마침 호주 200주년 생일이라는 것이였다. 일 년중 제일 바쁜 몇 날중의 하루였던 것을 몰랐다. 그 전 주인은 처음 일주일은 잘 가르쳐 주더 니 두째주 부터는 볼수가 없었다. 함흥차사에 전화도 불통이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 으로 먹는 다는 식으로 그럭저럭 견디었다. 집사람은 할줄도 모르는 일을 겁도 없이 시작했다고 성화를 하더니 단념을 했는지 앞치마를 두르고 정신이 없는듯보였고 친구도 열심히 했다.
아침과 점심 피크시간을 지나면 좀 한가해서 나는 거기서 시간을 소비하는것이 싫었다. 곧 가게 가까 이에 있는 빌딩에 사무실 하나를 임대 계약을 하고 사무실을 개설했다. 한국, 일본과 무역을 해볼 생각이였다. 각종 사무집기며 통신 시설이며, 비품이며 사무용품을 비롯한 인쇄물 준비로 바쁜 중이였는데 가게에서 친구가 올라와서 큰일 났다는것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호주 여자 종업원이 Wage를 올려주지 않으면 일 못하겠다고 사보타지 하느라고 벽에붙은 메뉴판을 스프레이로 보기 흉하게 황칠을 했다. 일이 보통이 아니였다.
그들은 가게에서 2년정도 일 했고 이유인 즉 그전에는 주인이 다 알아서 준비하고 자기들은 팔기만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주인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재료 사는것 부터 준비를 전부 자기들이 해야하니 당연히 돈을 더 달라는것이였다. 나도 동의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이렇게 사보타지 하는것은 경우가 아니고 또 내가 상황파악이 되고나면 당연히 올려 줄텐데 너무 심한 공격이라 화가나서 Police를 부르겠다하니 불러라해서 Police가 왔다. Police 가 상황을 보니 동양인 주인과 호주 아가씨들간의 개인 사정인 것을 알고, 이런 일은 Police가 바쁘니 당신들끼리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하면서 가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할수없이 그 날까지의 wage를 계산해주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하고 당분간 문을 닫기 로했다. 아크릴 메뉴간판을 제작하는 곳을 찾아보니 한국사람이 하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만나 견적을 받아보니 $12,000불에 기간은 10일 걸린다 해서 Cash 로 지불할테니 $10,000불로 해주고 1주일로 끝을 내달라 부탁했다. 간판 Mr. Lee는 망설이다가 작업하기로 하고 그동안 우리는집에서 센드위치 포장하는 것, 커피 우유데워서 거품 내는법, 센드위치 이름 외우기 등 연습했다. 일주일후 네온 싸인이 돌아가고 메뉴판이 훤하고 보기가 좋았다.
어느날 친구가 사무실로와서 오늘 무슨일인지 가게 주변에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기마병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고급승용차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오늘저녁 에 프랑크시나트라가 시드니 엔터테인먼트(우리가게 가까운 길몫)에서 공연을 한다는것이 였다. 나는 옳구나. 오늘 저녁 제대로 한번 해보자 생각하고 퇴근후 집사람은 집에가고 내 친구 와 나는 공연이 끝날때까지 기다려보자 하고 물건을 채우기 시작했다. 냉장고 각종음료, 파이, 생과일 쥬스, 튀김, 커피 기계 작동 완료하고 주위의 가게는 다 닫았는데 우리만 전기 켜놓고 미친사람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은 후덥지근하고 더워서 꽤나 갈증나는 밤이였다. 10시 반쯤되니 사람들이 슬슬 몰려오기 시작했다. 모두 음료수를 찾았다. 워낙 사람이 많이 몰려드니 누가 무엇을 사고 돈은 어떻게 받았는지도 모를 지경이였고 사람들은 정직하게 카운터에 돈을 놓고 냉장고에 것을 꺼내가는 식이였다. 거의 준비해둔 것이 다 팔렸다. 12시쯤 되어 끝이나고 돈을 모아 세어보니 낮에 종일 판 매상과 비슷했다. 문을닫고 잔돈과 동전이 잔득들어있는 돈 자루를 들고 친구와 주차장으로 가면서 웃기는 했으나 쓰린가슴에 이슬이 흘러 내리는것 같았다.
어느날 아침 관광버스가 우리 가게 앞에 섰다. 한국 관광객이 여럿 내렸는데 그중에 우리집 사람 고등학교 동창 부부가 우리가게에 쥬스를 먹으러 왔다. 뜻밖에 만난 친구여서 집사람은 밖에 나가서 친구와 반가웠겠지만 나로서는 집사람이 혹시 친구보는 앞에서 겨우 이런 가게를 하고 고생하고 있구나 친구가 실망하지는 않을가 집사람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다행인것은 집사람은 친구에게 부끄러운 모습 한점없이 당당하고 밝았다. 억지로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 겠다. 아마 이런 장사가 우리의 목표가 아니고 다만 높은 목표를 향해가고 있는 한 과정이라고 위안했을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가게를 하던중이였기때문이였다.
어느날 하루는 가게에 도착하여 깜짝놀랐다. Shutter 가 반쯤 올려져있고 알마늄 도어가 부서져 있었다. 선반에 있던 여러 층의 담배가 몽땅 없어졌다. 불량 좀도독이 저지른 짓이였다. Police에 신고를 하였으나 아무 도움이 되지못하고 오히려 번거로워 일하는데 지장이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일해도 가게세 지불하고 재료비 빼고 인간비 주고나면 돈이 생각만큼 모여 지지 않았다.
옆가게 친구보고 이아케이드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니 중국인 Bernard Chen이라했고 시드니 중국교민중에는 아마 몇번째가는 큰 부자 할아버지라했다. 혹시 한번 보면 나에게 좀 알려달라 좀 만나고싶다했다. 어느날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왔다고 가르켜주어서 당장 앞에가서 인사를하고 내소개를하고 차를 한잔 대접해드리고싶다고 말했다. 그 어른은 이층 식당에서 만나자고했다. 사실 청이있어 뵙자고했다 말씀드리고는 “가게세를 좀 낯추어 주시면 고맙겠다했다. Chen 할아버지는 싱긋이 웃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16 세에 중국에서 파파뉴기니아로가서 25년간 사탕수수밭에서 힘들게 노동을했다. 돈을 모우면 호주로 와서 땅을 샀다. 지금 이자리도 그때는 창고였는데 화재가 나서 그뒤 쇼핑쎈터를 지었 다 .” 라고 하시면서 노동을 할때 아무리 힘들어도 월급 올려 달라 투쟁 한번 안했다. 주면 고마웠 고 그돈을 어떻게 모우고 어떻게 투자할까 이것이 나의 고민이였다. 세를 깍아주는것은 좀 어렵 고 대신에 자네에게 큰 혜택을 하나 주겠다. “그자리에서 무엇이든지 자네가 하고싶은 장사를 하라” 여름에는 찬 음식, 겨울에는 더운 음식, 품목을 바꿔도 좋으니 마음데로 아이디어를 내어 해 보시게.”그때 나는 큰 충격으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역시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은 좁은 생각의 틀에서 탈출하여 고정관념을 깨고 난관을 뛰어 넘을수 있는 사람이어야하는구나 라는 심오한 진리를 발견 한듯 했다. 내가 그 좁은 공간에 갖혀 틀에박힌 제한된 한계내에서 일하는 내모습을 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큰손이 나를 어루만지는것 같았다. 그후 다시는 그 할아 버지를 만날기회는 없었고 어느듯 30년이상의 세월이 흘렀고 늘 고맙고 감사함을 느꼈다.
장사시작 한지 1년이 다되어갈 무렵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가게를 비울수 없으니 휴가도없고 여행도 없었다. 그러던 중 서울서 이민을 와서 심심하니까 거의 매일 우리가게에와서 앉아 놀면서 우리가게 사정을 아주 잘아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가게를 팔려 고 신문광고를 내겠다하니 따른 사람에게 팔지말고 자기에게 넘기라는 것이다. 원래가게는 친한 친구에게는 팔지말라는 옛말도 있으니 모르는 사람에게마음편히 팔겠다했다. 친구는 진정 으로 가게를 원했고 서로를 잘아는 친구니 마음은 편했다. 샀던가격 그대로로 넘기고 친구가 일을 할수 있을때까지 나와서 도와주기로하고 넘겼다. 꺼꾸로 이제는 내가 그 가게에 놀러가게 되었다. 년초기되어 다른 일을 하기는 해야하는데 무엇을할까 생각하다가 원칙을 세웠다.
- 가족 전체가 매달리는 일은 안된다.
- 큰돈이 드는 것은 안된다. (돈도 없지만)
- 하루종일 좁은 공간에 갖혀 있는 일도 곤란하다.
- 단위가 좀 커야한다. 아리스크림 100개 바쁘게 팔아봐야 겨우 $200-300 불이다.
- 일이 장래성이 있어야한다.
고민중인데 집사람이 커피한잔을 가져와서 부동산을 시작해보면 어떻겠느냐? 는것이다. 나에게 적성에 맞을것같다는것이다.
영어 62 오식원동문